거국정부(擧國政府)는 특정 하나의 정당에 얽매이지 않고 여당과 야당이 각각 추천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꾸려지는 내각. 주로 전시, 내전 또는 정쟁 등으로 일반적인 국정 수행이 어려운 경우에 구성된다.
대표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윈스턴 처칠 내각이 전형적인 거국내각의 사례로 국가적 위기를 맞아 여당이었던 보수당과 야당이었던 노동당이 모두 내각에 참여했다.
보통 의원내각제와 달리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대통령이 행정부의 모든 권한을 가지기 때문에, 총리에 의한 거국정부가 성립되기 어렵다.
하지만 2016년 10월 대두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하여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를 찍는 등 폭락하면서, 야권 일각에서 국정마비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거국정부안을 먼저 주장하게 된다.
처음엔 청와대와 여당인 새누리당 일부에서도 일부 난색을 보였지만 하야나 탄핵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민심이 너무 좋지 않아 지자 울며 겨자 먹기로 결국 2016년 10월 30일 새누리당도 거국내각구성을 청와대에 촉구하기로 결정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수락해도, 거국정부가 실제 수립될지는 미지수였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는 표현조차 부족할 정도로 사라졌는데 이제와서 내각을 구성한다 해도 야권에서 얼마나 협조를 해줄지, 그리고 국민들이 이 내각을 지지해 주긴 할지 모든 것이 깜깜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국정농단의 행보가 나타난 정권은 역대 정권 중 단 하나도 없었다. 또한 거국내각은 선례가 전혀 없었던 상황이기에 여당도 야당도 모두 차후 국정운영에 대해 골치를 앓았다.
2016년 11월 2일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과 협의도 하지 않고 뜬금없이 참여정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총리 내정자로 지명함으로써 또다시 절차상 논란을 야기시켰다.
야당에선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요구하며 줄곧 여야 합의에 의한 국회 동의를 거친 총리를 지명해야된다고 주장했는데, 사전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당이야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게 당연하니 그렇다 쳐도 여당의 대다수 의원들조차 이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대통령이 거국내각을 거부하고 국정주도에서 발을 뺄 의사가 털끝만큼도 없음을 보여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야당들은 뒤통수를 거하게 처맞은 셈이 되었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야당에 대해 국정마비사태 수습이 우선이라며 거국중립내각 참여를 요구하던 여당 측에서도 할 말이 없었다.
김병준 총리 내정자도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대통령이 외치, 자신은 경제/사회 분야의 내치를 전적으로 담당하기로 이해했다고 밝혔다.
정작 대통령은 대국민사과 등 공식 석상에서 그런 부분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청와대 관계자들 입에서만 사실상 거국내각을 수용한 책임총리제라니 어쩌니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어 진짜 대통령의 의중이 뭔지 계속 논란이 일었다.
결국 여당과 야당들의 거센반발을 견디지 못하고 2016년 11월 8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찾아 정세균 국회의장을 예방하고, 언론 앞에서 여야 합의에 의해 총리를 선출하면 그에게 내각을 통할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하였다.
이에 정세균 국회의장은 총리의 권리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야 3당에선 대통령의 2선 후퇴가 없는 한 총리협상은 없다고 제안을 거부했다.
이와 함께 거국내각 구성에서 총리의 명확한 권한에 대한 논의도 나왔는데, 원래는 대통령이 외치를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는 일종의 이원집정부제형 거국내각이라고 많이들 생각했다.
야권 일각에선 이미 외신에 대서특필되어 국제적 권위도 상실된 대통령을 어느 국가 지도자가 신뢰하겠냐며 대통령은 형식상 의전만 하고 외교/국방 같은 외치 권한도 총리에게 양도해야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여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는데, 사실 실제 정책을 하다보면 외치와 내치를 구분하기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 대통령, 총리가 대립하면 결국엔 임명권자인 대통령 뜻대로 되는 경우가 많아 결국 총리는 허수아비 총리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도 문제이다.
이에 청와대에선 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이라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데 이것까지 내주는 건 헌법위반이라는 말이 나왔다.
야권에선 "헌법을 먼저 위반하고 국정농단을 한 주체가 누군데 적반하장이느냐", "그래도 헌법 무시하면 안 되니 차라리 탄핵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11월 9일에 청와대에서 2선 후퇴는 있을 수 없고, 차라리 탄핵을 하라고 밝히고, 11월 21일에는 더불어민주당을 마지막으로 야 3당이 모두 탄핵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거국내각 논의는 완전히 무산되었다.
간혹, 일부 언론 등에서 1992년 노태우 정부 당시 취임했던 현승종 국무총리 내각을 한국 헌정 사상 최초의 거국내각으로 언급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실제와는 다르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임기말 레임덕에다가 연기 군수의 관권 부정선거 폭로로 치명타를 맞은 상황이었다.
결국 노태우 대통령은 집권여당인 민주자유당을 탈당하면서 중립내각을 선언하고 정치경력이 없는 현승종 교수를 국무총리로 임명하면서 다가오는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민주당 등 야당과의 협의는 전혀 없었고, 정작 내각에 야당 인사가 참여하지도 않았다. 단지 노태우 대통령의 일방적인 발표와 여당의 강력한 지지 아래 총리 취임이 있었을 뿐. 사실상 이를 거국내각으로 보긴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