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는 1951년 3월 31일 전라북도 익산군 함열면에서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의사였던 부친이 전쟁 중에 피살되어 모친 슬하에서 성장했다.
1953년 서울로 이주하여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진학, 김민기는 학과 수업보다 음악에 더 몰두하게 되었다.
그는 동창이며 후에 산업디자이너가 된 김영세와 함께 ‘도비두’라는 듀엣을 결성하고 음악 활동을 시작하면서 2학기 때 휴학했으며, 1977년 전역 후에야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기타를 독학하는 등 음악에 관심을 두었던 김민기는 휴학 후 본격적으로 <아침이슬>, <가을편지>, <꽃 피우는 아이> 등을 작곡했고, 고등학교 시절 작곡했던 <친구>와 함께 1971년 <김민기> 1집에 담았다.
같은 해 김민기가 편곡하고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도 발매, 이 곡은 기존 대중음악과 다른 가사와 포크 스타일의 곡이 주는 신선함으로 대중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1973년 정부에 의해 건전가요로 지정되기도 했다.
1972년 <꽃 피우는 아이>가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김민기의 활동이 다른 의미의 주목을 받기 시작, 김민기는 1973년 김지하의 연극 <금관의 예수>에 수록된 음악을 작곡했다.
이때의 연극 제작 참여 경험을 바탕으로 1974년에는 <소리굿 아구>의 희곡을, 1978년에는 <공장의 불빛>을 썼다. 1974년 입대한 후인 1975년 <아침이슬>이 금지곡으로 지정되었고 <김민기> 1집도 판매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김민기는 1977년 전역한 후 학사 학위를 받았지만 특별한 직업을 갖지 않은 채 작곡 활동과 함께 공장과 탄광 등에서 막노동을 전전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978년에는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제작했으며, 이때부터는 정부의 보이지 않는 압제에 의해 제도권 음악 활동을 거의 접게 되었다.
김민기는 고향 전라북도 익산을 거쳐 김제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천리길>을 작곡했으며, 1981년에는 경기도로 옮겨서 농사를 지으며 농산물 직거래 등 농촌 운동을 펼쳤다.
1983년 연극 <멈춰 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의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 이 시기에는 김석만, 오종우와 함께 여러 마당극과 뮤지컬 등을 기획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1984년에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음반을 제작했다.
김민기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음악 활동을 이어갔고 1987년에는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 어린이 노래극 <아빠 얼굴 예쁘네요>를 제작했다.
1989년에는 농촌 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태운동 단체 한살림 모임에서 발전한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한살림)에서 초대 사무국장을 맡아 한살림 운동이 정착하는 데 기여했다.
1987년 서울의 봄을 맞아 신군부의 전제적인 통치가 막을 내리면서 문화예술계에도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김민기는 1990년 한겨레신문이 주관한 ‘겨레의 노래 사업단’에서 기획한 <겨레의 노래>의 총감독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문화 현장에 뛰어들었다.
김민기는 1991년 독일 폴커 루트비히 각본, 비르거 하이만 작곡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Linie Eins)>을 스스로 한국어로 번안한 <지하철 1호선>의 연출을 맡아, 자신이 개관한 소극장 학전에서 공연하기 시작했다.
소극장 운영을 위한 자금이 필요해지자, 그는 1993년 서울음반과 계약을 맺고 자신의 곡을 직접 부른 <김민기> 1~4집을 제작하여 이를 충당했다.
1994년에는 극단 학전을 설립하고, 창작 노래극 <개똥이>(1995)를 작곡, 연출했다. 또한 <지하철 1호선> 원작자인 폴커 루트비히의 <의형제>(1998), <모스키토>(1999) 등을 번안하여 연출했다.
이 무렵 소극장 공연이 전성기를 맞으면서 학전소극장을 '학전블루소극장'으로 개명하고, 1996년에는 학전그린소극장도 개관했다.
2004년 이후 그는 대외적인 공식 활동을 자제하면서 학전 운영에 전념했다. 이 시기의 그는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노래극과 연극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김민기는 뮤지컬 <분홍병사>(2010)•<도도>(2010), <그림자 소동>, 영상노래극 <아빠 얼굴 예쁘네요>(2016) , 연극 <진구는 게임 중>(2008), 청소년극 <복서와 소년>(2012), <유령놀이>(2014) 등을 번안, 각색, 연출했다.
1991년 첫 공연을 시작한 <지하철 1호선>은 2008년까지 18년 동안 상설 공연된 후 4,000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으며, 2001년에는 독일에서 공연을 갖기도 했다.
2007년에는 <지하철 1호선>의 장기 공연을 통해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독일문화원에서 김민기에게 독일 정부에서 수여하는 문화 훈장인 괴테 메달을 수여했다.
2010년을 전후하여 소극장 관객이 대형 뮤지컬 공연장으로 옮겨가면서 학전 경영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결국 2013년에는 학전그린소극장의 문을 닫았다.
김민기는 2018년 9월 10년 만에 <지하철 1호선> 공연을 재개하여, 2023년 12월 31일 막을 내렸고 이 무렵부터 김민기의 위암 투병 소식과 함께, 소극장 학전의 재정 문제로 인한 폐관이 결정되었다.
결국 2024년 3월 15일 학전의 시대를 마감했다. 김민기는 2024년 7월 21일,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김민기는 오랫동안 국내외에서 대한민국 대중예술의 품격을 한 차원 높인 진정한 예술인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백상예술대상 음악상(1995), 서울연극제 특별상(1996), 동아연극상 작품상(1999),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대상(2001), 독일문화훈장 괴테메달(2007)을 받았다.
김민기는 대한민국연극대상 아동청소년연극장(2008),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2013), 한독협회 이미륵상(2014), 한국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2018), 호암문화재단 호암상(2020) 등을 수상했다.